아, 재미나겠다 하고 집어 들었지만 용두사미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에세이책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과 표지 그림과, 무엇보다 #신이현 이란 제 오랜 기억 속에 머물던 작가의 이름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재밌습니다. 작가의 필력과 특별한 경험이 만나니 시너지 뿜뿜이랄까요?
프랑스인 남편의 꿈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작가. 농사와 양조기술은 남편이 갖고 있지만 능력치 현저히 떨어진 이방인 신세, 내 나라에서 내 언어로 활개 치고 싶었지만 관심도 없는 농사와 와인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하는 부인.
그건 너의 일이다!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남편의 앞잡이가 되어 줄 수밖에요. 앞을 보지 못하는 친구와 걷지 못하는 친구의 환상적 짝꿍 플레이는 부부 사이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비극입니다.
조금은 두렵지만 그래도 부푼 마음을 갖고 한국 살이를 시작했습니다. 한국 농촌의 현실은 안중에도 없고, 프랑스 농부 남편은 오로지 땅과 나무 새와 벌레를 위한 농사에만 관심이 있네요. 더 나아가 효율을 추구하는 이웃에 대한 불만까지 부인에게 얘기를 하니 뭐라도 소출을 내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얘기도 못하고 부인은 양쪽 현실의 경계에서 아주 속이 터집니다.
나는 그가 남의 농사일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듣기 싫어 벌컥 화를 낸다. 내 반응에 그는 더 심하게 화를 내고, 나는 또 그의 반응에 더욱 화를 낸다. 자기 마누라도 아닌 박테리아들이 무거운 트랙터에 짓눌려 죽는다고 화를 내며 펄펄 뛰는 너는 정말 미친놈이다...... p64p64
농사지은 작물로 #내추럴와인 과 #사과시드르 를 만드는데 코르크 조이는 철사 하나도 수입을 해와야 하고 수입 절차는 또 얼마나 복잡한지. 평생 읽고 쓰고 웃고 술 마시며 살아온 작가는 매일매일 여기저기에 답을 구하느라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죠.
글쎄, 비가 내리지 않는 게 내 잘못인가? 나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지고 대답해야 한다. 정치와 문화는 물론이고 농업과 국세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등. 모든 분야에 책임감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 그는 콧방귀를 뀐다. p107
매일매일의 좌충우돌이 작가를 자연의 일부로 만들어 갑니다. 내가, 우리가 포도를 키우고 사과를 키우고 그걸로 술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땅의 흙을 행복하게 해 주고 그 흙이 포도와 사과를 자라게 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껴요. 통마다 맛이 다른 와인에 대한 기대감, 이 아이는 우리에게 어떤 맛을 선사할까를 궁금해합니다.
이상야릇한 맛의 과일을 먹고, 이상야릇한 생각을 하고, 이상야릇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달콤하기만 한 과일밖에 없으니 큰일이다. 이상야릇한 생각을 많이 해야 노벨 문학상도 나오고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괴짜 과학자도 나올 텐데, 내가 이런 푸념을 하니 레돔은 노벨 문학상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고 한다. p116
이렇게 작가는, 부부는 눈알이 팽팽 돌아가는 빠름 빠름 한국살이에서 내추럴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맛이 아니고 내일은 오늘의 맛이 아니다. 이 순간만의 맛이다. 술로 완성되었을 때는 또 다른 맛으로 태어난다. p150
올 추석에는 이곳에서 내추럴 와인을 사서 취해보려고 합니다. 벌써 추석이 기다려지네요.